15년 만에 결실을 맺은 한국계 미국인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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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신실하게 복음을 전한 매트 (Matt)와 오드리 치즘 (Audrey Chism) 부부가 침례를 준 사람들은 단 세 명 뿐이었는데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딸들이었습니다.

치즘 부부는 이제 그만두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트와 오드리 부부는 어느 자매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절대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난민들은 사막을 가로질러 안전한 곳으로 피난하기 위해 수백 마일을 이동했습니다. 국제선교부 (IMB)의 사역자 매트 치즘은 이 여정에 함께했습니다. IMB 사진

이는 그들답지 않은 매우 이례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치즘 부부는 보통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소개하고, 상대방을 위해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지 묻곤 했습니다. 수년 동안 마음과 정성을 다해 다가가기 힘든 사람들에게 헌신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던 시간은 치즘 부부, 특히 매트를 극심한 한계에 다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치즘 부부가 자신들이 섬기는 민족이 사는 나라에 거주할 때는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치즘 부부는 그 나라를 떠나야 했고, 인근 국가로 옮겨가 그곳에서 계속해서 그 민족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치즘 부부는 새로운 곳에서 계속해서 성실하게 복음을 전했지만, 지리적인 변화가 복음에 대한 관심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매트는 사진작가이자 비디오그래퍼로서, 몇 년 전 난민들의 대규모 탈출을 기록하기 위해 난민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난민들과 함께 위험한 여정을 떠났고, 지중해를 건널 때 정원을 초과한 구명보트를 탄 난민들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매트가 난민들이 많이 정착하는 유럽에 도착했을 때, 한 한국인 목사로부터 자신의 교회에 난민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매트는 원래 사진을 찍으러 갈 계획이었지만 결국 20명의 무슬림들에게 그 사람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정치적 자유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여러분을 이곳으로 데려오셨다”고 매트는 난민들에게 전했습니다.

매트는 자신과 오드리의 마음에 품고 있던 그 사람들에게 아무런 제약 없이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것이 바로 “하늘을 만지는 듯한 순간”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돌아온 후에도, 자신이 할 줄 아는 언어를 쓰는 1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그 유럽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치즘 부부는 유럽으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첫날부터 치즘 부부는 난민 캠프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 동네에만 약 500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13개의 캠프가 있었습니다. 350명 이상의 난민들을 섬겼지만 여전히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난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중해를 건너는 여정에 도전합니다. 구명보트에는 정원을 훨씬 넘는 인원이 탑승해 있습니다. 매트 치즘은 난민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매트와 아내 오드리는 국제선교부 (IMB)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IMB 사진

매트가 깊이 관계를 맺으며 형제처럼 지냈던 한 난민이 침례받기로 결단했습니다. 치즘 가족은 매우 기뻤습니다. 마침내 누군가가 메시지에 응답했던 것입니다. 치즘 부부는 침례식과 뒤이은 축하 행사를 준비하며 여러 사람들과 자원봉사팀을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는 갑자기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 형제는 나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연락조차 닿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그 형제는 독실한 무슬림 여성과 결혼했고 예수님을 믿는 데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즘 부부는 사역에서 중대한 고비를 맞이했습니다. 매트는 그 시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고,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과도 같았고, 톰 크루즈 (Tom Cruise)가 나타난다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 부부는 15년 동안 사역에 인생을 쏟아부었지만 이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지로 나가기 전 목사였던 매트는 미국으로 돌아가 한인 교회를 섬기며 더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매트는 “내게 두 번의 인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가치 있는 일에 우리의 삶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그 무렵, 한 한인 교회의 기도 모임에서 그들을 찾아와 함께 기도해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매트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거의 포기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기도 모임의 분들은 무척이나 적극적이었습니다. 그 기도 모임의 분들은 현지 교회 바닥에서 잠을 자며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기도하는 데 온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매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불어와 사람들의 삶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 모임의 분들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난민 자매가 이 부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매트는 마지못해 따라갔고, 그때 오드리에게 자신은 예수님이나 성경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난민들은 고국에서 벌어진 폭력을 피해 도보로 탈출하고 있습니다. 매트와 오드리 치즘 부부는 국제선교부 (IMB) 소속으로 난민들과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매트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들의 여정을 기록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기도하는 시간을 보낸 후, 치즘 부부는 유럽으로 이주해서 난민들을 섬기기로 했습니다. IMB 사진

치즘 부부는 식사 전에 기도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매트는 오드리에게 기도를 부탁했는데, 낙담과 패배감이 너무 깊어 기도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드리는 주님께 음식에 축복을 내려달라고 간단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오드리는 그 여성이 눈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혹시 울고 있었던 건 아닐지 생각했습니다.

오드리와 그 자매가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 자매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오드리는 “그분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가 한 번 더 물었고, 오드리는 그분이 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그 자매는 오드리가 인도하는 여성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이 부부가 다니는 교회에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했고 치즘 부부에게 침례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부가 기다려 온 변화된 삶이 마침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침례식 당일의 일기 예보는 눈과 진눈깨비였습니다. 치즘 부부는 침례식이 강에서 진행될 예정인데 눈과 진눈깨비가 올 텐데 침례식을 연기하고 싶은지 그 자매에게 물었습니다.

“얼음이 있더라도 깨고 들어가서 침례받고 싶다”고 그 자매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 자매의 반응은 매트가 온 마음을 다해 섬겼던 그 형제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매트는 그 형제가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면 새벽 1시에라도 찾아가곤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하나둘씩 복음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팬데믹 기간 이 부부는 가장 바쁜 사역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부부는 침례를 베풀고 제자를 삼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부는 전국 13개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봉쇄 기간 이들은 온라인으로 만나 다른 도시에 거주하는 난민들에게까지 그 범위를 넓혔습니다. 곧 36명이 믿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할 수 없었지만, 노력은 했다”고 매트는 말했습니다. “저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아무런 열매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고 덧붙였습니다.

오드리는 “내가 이만큼만 하면 열매를 보게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치즘 부부는 글로벌 선교 동역자 (GMP)들을 훈련하고 준비시키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매트는 자신과 오드리가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을 훈련함으로써 복음의 영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매트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것은 저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교, 즉 미시오 데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지만, 사실 우리 없이도 혼자서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우리를 그분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초대하십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보안을 위해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5월은 아시아계 미국인 및 태평양 도서 주민의 달을 기념하는 달입니다. IMB 함께 열방에서 섬기고 있는 AAPI 선교사들께 감사드립니다. 미국 2,184개의 남침례교 아시아계 미국인 교회와 IMB와의 동역에 감사드립니다. imb.org/asian-church-missions 방문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보실 있습니다.